지난달 30일 광주시립교향악단은 새로운 상임지휘자 구자범 씨와 함께 성공적인 정기연주회를 마쳤다. 독특한 이력으로 화제를 모은 구 지휘자의 실력과 한 층 향상된 광주시향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연주회였다. 올 3월, 1년 이상 공석이었던 상임지휘자 자리에 구 지휘자가 임명된 것은 반가우면서도 놀라운 일이었다. 독일 하노버 국립오페라극장의 수석 상임지휘자까지 역임한 그가 음악적 ‘변방’에 가까운 광주로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첫 지휘에 거는 기대와 관심도 컸다. 이날 공연은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 나단조 작품(조영창 첼리스트 협연)과 말러의 교향곡 1번 거인으로 구성되었다. 본 연주가 끝나고 관객들은 기립박수를 치며 앙코르를 외쳤고, 시향은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천둥과 번개’ 폴카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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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웹진씨네트워크 안이슬 | ▲ 공연을 마치고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는 구자범 상임지휘자와 광주시향 단원들. |
말 러의 거인은 상당한 테크닉이 요구되어 연주와 지휘가 까다로운 곡이라 알려져 있다. 대중에게 익숙한 곡을 선택해 안전하게 첫 지휘를 마칠 수도 있었지만 구 지휘자가 거인을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단원들의 자신감 향상을 위해서였다. 거인은 각 파트가 ‘솔로’처럼 제몫을 다해야 곡이 담고 있는 다채로움이 느껴지는 곡이다. 구 지휘자는 “조율은 제가 할테니, 각자의 개성을 충분히 살려 연주해달라”고 주문했다. 일 년 동안 지휘자가 공석이었던 데다, 시민들의 낮은 관심에 저하된 사기를 올려주고자 한 속 깊은 배려였다. 그의 바람대로 이번 공연은 단원들이 자신감을 되찾기에 충분했다. 앙코르 연주가 끝나고도 관객들은 기립박수를 멈추지 않았다. 계속되는 커튼콜에 지친 지휘자가 악장을 데리고 들어가며 마지막 인사를 할 정도였다. 몇몇 단원들은 오랜만에 공연장을 꽉 채운 관객들을 보며 눈물을 글썽였다. 공연 이틀 전에 전석 매진 공연 티켓 판매량에서도 ‘구자범 효과’가 발휘됐다. 이전에 초대권석을 포함해 700~800여석이 채워졌다면, 이번 공연은 이틀 전에 1700여석이 매진되었다. 초대권은 발행하지 않았고, 정기회원 500여명을 제외하면 모두 유료 관객이었다. 이날 티켓을 구하지 못한 수 십 명의 관객이 서서 공연을 지켜보기도 했다. 문예회관은 예매가 시작되기도 전에 정기회원가입이 급증해 가입 제한을 공지했다. 현재 교향악단회원은 목표한 숫자를 넘겼고, 문예회관 우대회원도 가입 정원에 가까워지고 있다. 앞으로 우대회원이 더 늘게 되면 교향악단의 무료혜택을 폐지하고, 1인 2매에 한해 50% 할인 판매를 실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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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문화예술회관 홈페이지 | ▲ 정기회원가입이 급증해 가입제한 공지를 올린 광주문예회관. |
이날 독일에 거주하고 있는 구 지휘자의 가족과 월간 <객석>의 발행인이자 연극인 윤석화 씨도 공연을 관람해 눈길을 끌었다. 독특한 팜플렛, 문턱 없는 리셉션 관객들에게 무료로 배부된 공연 팜플렛도 독특했다. 철학을 전공한 지휘자의 성향 때문인지 내용면에서 달랐다. 음악 칼럼니스트들의 곡 해설 외에, 김동규 연세대 철학박사와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의 글을 실어 철학과 음악의 앙상블을 보여줬다. 지휘자와 관계자의 겉치레 취임사나 연주자들의 얼굴을 몇 장에 걸쳐 싣지 않아 군더더기 없고 유익했다. 관계자들만 출입하던 리셉션장의 고압적인 분위기도 허물었다. 인터미션과 공연이 끝나고 펼쳐진 리셉션에는 누구나 함께할 수 있었다. 저렴한 가격에 맥주와 음료를 제공하고 공연의 여흥을 즐기게 했다. 이번 공연에는 미처 알지 못하고 공연장을 빠져나간 시민이 많았지만 앞으로는 더 많은 관객이 참여하도록 계속 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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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웹진씨네트워크 안이슬 | ▲ 관람객에게 배부된 공연팜플렛. 총 23쪽에 이르는 '미니북'은 곡의 이해를 도우는데 손색이 없었다. | 공연 후에는 개인 블로그와 광주시향 카페에 정기 공연 후기가 속속 올라왔다. 또한 고전음악 애호가들이 주로 가입된 고클래식(http://www.goclassic.co.kr/)에도 관람기가 올라왔다. 후기에는 독일에서 건너온 젊은 지휘자와 함께 광주시향이 무언가를 해낼 것 같다는 기대들로 가득했다. 한 영화커뮤니티의 레드필은 “연주자들 중에 연주하는 모습만 보아도 소리가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구 지휘자가 그랬다”며 “오케스트라 단원 입장에서는 환장할 만큼 신나는 상황이었고 관객입장에서도 들리지 않는 소리를 보게 된 것”이라 전했다. 고클래식의 negative는 “드보르작에서는 큰 인상을 받지 못했지만 말러에서 30년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파트별로 깨끗이 빠져나오는 시향의 소리를 들었다”며 “지휘는 과감하고 힘이 넘쳤고, 프레이즈는 뉘앙스가 살아 생생했고 자질구레한 리듬의 변화에도 단원들이 정확하게 잘 따라왔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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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웹진씨네트워크 안이슬 | ▲ 관객들은 지휘자가 퇴장하고도 기립박수를 멈추지 않았다. | 한 악장 끝나면 박수가 공연 내용은 흠잡을 곳 없었으나 관람 태도가 다소 아쉬웠다. 콘서트장에는 일명 ‘안다 박수’가 있다. 2004년 국립국어원 신어자료집에 실린 이 말은 곡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오는 박수를 의미한다. ‘나는 음악이 언제 끝나는 지 안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이 여운을 느낄 사이도 없이 잰 체하며 치는 박수다. 광주시향의 공연에서는 ‘안다 박수’ 보다 ‘모른다 박수’가 더 많이 나왔다. 첫 박수는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 1악장이 끝나고 나서 터졌다. 첫 박수는 클래식 공연에 관심을 두지 않던 관객들이 공연장의 ‘룰’을 깜박하고 쳤던 것이라 이해할 수 있었지만, 다음 ‘모른다 박수’는 모두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2악장을 끝내고 3악장에 들어가려고 지휘자가 예비박을 주는 순간, 다시 박수가 터진 것이다. 결국 관객들의 박수 때문에 3악장은 어수선하게 시작해야했다. 그러나 더 큰 ‘재앙’은 ‘말러의 거인’에서 있었다. 2악장 게네랄파우제 (모든 악기가 일제히 쉬는 것으로 악곡의 흐름을 갑자기 정지시키는 효과적인 기법)에서 박수가 다시 터진 것이다. 만약 관객들이 사전에 곡을 들어보고 음을 귀에 익게 했다면 생기지 않았을 헤프닝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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